기억에서 오랫동안 비켜나 있던 생의 아픔들에 갇히던 지난 몇 년 동안, 난 얼떨떨했고 힘들었다.
이유는 이사 문제로 조금 지쳤던 일 말고는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무엇인가 허했고 정신적으로 허약해 있었다.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정성어린 배려와 도움을 받아 무사히 빠져 나왔음에도자꾸자꾸 몰려오는 두려운 고독감과 무력감에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사람들로부터 멀어졌고 만나는 사람들도, 카톡 지인들과도 뜸해지며 점차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졌다.
시간은 내 기분과는 상관 없이 하루하루 지나 휙휙 일주가 되고 한 달이 되며 일 년씩이 겹쳐져 삼년이 끊겨 사라졌다.
코로나로 갇혀 지내야 했던, 사회적 여건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단조로움이 몸에 배어가던 어느 날 점심 약속이 있어 메를랜드 클럽에 갔는데 거기서 글 무늬 문우들을 만났다. 뜻밖의 조우였다. 안 그래도 문우들은 어떻게 지낼까 ? 궁금했는데 모두들 반갑게 대해줘 고마웠고 다시 나오란 말도 따뜻하게 안겨 왔다. 나가겠다고 약속은 했는데 그간 글을 쓰지않아 무뎌진 감각들이 걱정으로 남았고 컴퓨터도 켜지질 않아 작동 될지도 모르겠고 사실 사용법도 잊었음을 알았다. 유투브나 뒤적이고 도서관 책이나 빌려 읽는 정도였지 내 글쓰기는 완전히 멈춘 상태였다.평생 써오던 일기도 손목 관절로 접은지 오래다.
쪼그라든 기분을 갑자기 풀진 못 하지만 문학에 대한 막연한 향수도 남았고
무엇보다 문우들이 그리웠던지라 참석한 첫번째 모임은 옛정을 더듬게 하며 어쩜 글을 다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부풀려 주었다. 물론 글을 한줄도 안 쓴건 아니다. 카톡 글은 써 왔고 비교적 성의있게 답하는 편이라 모르지만 그렇게 쓴 답글들도 어느 정도의 습작글은 되었지 싶다.
문학회에 돌아온 후, 한번도 글을 안 써본 사람처럼 언제인가 쓸 수 있겠지 ?
위안인지 푸념인지를 툭툭 뱉어내는 내가 낯설었다. 그런 내 모습이 칼끝처럼 아프다. 그렇게 4개월간 어영부영 시간 잃는게 갑갑했고 거기에 대한 내 답변도 궁색하다. 시도하지도 않고 자신에 대한 믿음도 없는데다 노력도 부실한데 글이 써질까? 완전 망상, 그렇다면 글은 쓰지 말고 매일 한편씩 단톡에 올라오는 수필을 꼼꼼하게 읽어보자.
분석도 하면서. 안 써져도 능력 부족만 인정하면 편해질 수 있고 기다리다 써질 때 쓰면 되지 뭘?
난 편한 결론을 내리며 뜯기던 조바심도, 쓰고 싶은 욕심도 털어낸다.
그렇다. 복잡한 생각을 팽개치니 자유롭고 편하다.힘들던 머리도 박하사탕을 빨 때의 어린 날처럼 행복하다. 어떻게 살던 생은 나의 선택,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한, 내 결정에 편해야 마땅한 게 아닐까?
내 안의 질문에 그렇다는 답이 내 방식의 정답이라면 글 쓰는 일이 고통이 아닌 희열 섞인 작업이고 따뜻하며 정감 있는 휴식이길 바란다. 여름 날 나무 그늘, 봄날의 들판, 겨울밤의 난로 불빛처럼…..
창 넘어, 일들을 끝내고 퇴근하는 차들 행렬 속에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가는 차 안의 젊은 엄마인 내가 겹쳐진다. 그 시절, 힘들단 생각 대신 고단한 노동을 즐길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젊었기에 가능했던것이니까. 힘들었어도 젊음이란 얼마나 좋은 한 시절인가!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을 구분하고 설사 뜻대로 되지 않았어도 노력하고 있다면 즐거울 것이다. 형편없는 글이라도 쓰는동안 즐겼다면 목표는 달성한 것, 어둠이 깊다.창을 여니 바람 섞인 습기 찬 공기가 밀려온다. 사랑처럼 애매한 달콤함에 기분을 적시며 아이러시 크림 한잔에 행복하다. 살아온 세월들의 흔적들은 내게 있어 좋았던 것들, 아팠던 것들의 모든 것들이 합쳐져 그어진 시간이고 남겨진 생의 발자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