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흥원 회장의 33대 시드니 한인회가 오는 7월 출범한다. 정기총회 인준을 앞둔 강 회장은 이변이 없는 한 새 회장으로 확정돼 10만 시드니 동포의 대표로 큰 책무를 맞게 됐다. 32대부터 회장 출사표를 던진 그이기에 한인회 운영에 대해 나름의 밑 그림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인회 활성화에 올인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해 온 그다. 그만큼 한인회가 동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물러나는 윤광홍 회장은 노령의 나이에도 주 5일 한인회에 출퇴근해 한인회 활성화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혹자는 윤 회장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나 회장이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제한되어 있다. 작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코로나로 한인회관이 휴관 됐다. 한인회관에서의 모임도 예년에 비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가뜩이나 동포들의 발길이 뜸한 한인회관이 코로나로 적막 강산이었다. 회장이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퇴임을 앞둔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봤다. 한인회 운영에 따른 재정확보가 큰 난관이었다. 그 역시 한인회 운영 최우선 순위로 재정확보를 내 걸었다. 연 20불을 부담하는 한인회원을 확장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만만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1만명 회비 납부 회원을 목표로 발 품을 팔았으나 대략 첫 해에 5백명에 1만불, 임기 마지막 해에 9백명에 18,000불의 회비를 거뒀다.
1만명 회원 확보에 연 20만불의 재정확보 목표치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다.
그러나 한인회관을 운영하자면 유지비와 개보수비, 인건비 등 연 25만불이 소요된다. 부족분은 역대 회장이 했던 것과 같이 자신의 포켓주머니를 털어야 했다. 인건비를 줄이고 근검 절약하나 상당액을 부담해야만 했다. 거기에다 경조사 비용 등 한인회장 체면 유지비까지 셈하면 결국 세 자리 수의 기부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정부 판딩도 만만치 않았다. 무효화된 ‘비영리 체리티 기관’(Australian Charities and Not -for-profits Commission) 으로 재 등록해 최근 휠체어 사용 계단 설치 명목의 판딩을 확보했다.
재정확보가 되지 않으면 누가 회장이 되든 한인회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이치다. 회장의 기부금에만 의존하는 회는 어느 모임이든 소기의 목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연 회비 기부금 회원확보는 회장 혼자서 뛴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동포들의 적극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는 임기중 단 한 번만의 한인의 날 행사를 치렀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한인의 날 행사는 동포들로 하여금 한인회 존재를 각인케 하는 큰 행사다. 이 행사를 통해 회비납부회원을 확장하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으나 작년은 그렇지 못했다. 이 행사 외에는 한인회가 주도하는 큰 단위의 모임이 없는 것도 문제다. 동포들의 한인회 관심을 유도하자면 한인회의 존재감이 있어야하나 그러한 모멘텀이 거의 전무한 현실이다. 3.1절이나 광복절 행사에도 참석인원이 많이 잡아야 1백명도 채 안 된다. 그 외에는 동포들이 한인회에 올 일이 별로 없다. 노인회 월례회 행사 외에는 손 꼽을 만한 행사가 없다. 한인회 연 회비 20불은 잔돈에 불과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교회 등을 방문해 회비내는 회원 확보에 나서 보나 이해관계가 없다 보니 20불도 외면하는 현실이 됐다.
그렇다고 한인회가 동포들의 민원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창구도 되지 못한다. 10만 한인 커뮤니티로 성장한 동포 사회에는 숱한 단체와 교회, 친목회 등이 있어 동포들이 한인회에 등을 기대지 않고도 고민을 해결하고 이민생활을 꾸릴 수 있다.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1년에 한 번 열리는 한인의 날 외에는 별것이 없는 한인회가 되어 버렸다. 회장의 잘못도 아니고 누굴 탓할 것이 못된다. 시드니 커뮤니티가 커지다 보니 생긴 자연현상이다. 20-30년 전 한인회와는 그 성격이 달라졌다. 시드니 동포 3-4만명 시절에는 한인회에 대한 동포들의 애정과 관심이 컸다. 시드니 한인회장 선거도 치열했다. 언론에 광고 캠페인이 난무했고 후보 선거 사무실은 운동원으로 문전성시였다. 한인단체가 그리 많지 않던 그 시절에는 시드니 한인회가 동포사회의 중추역할을 했다. 호주정부 상대 동포 숙원 사업이나 민원도 한인회가 주도 역할을 했다. 동포들이 등 기댈 일이 많았다.
지금은 30대이후 윤 회장 32대까지 모두 회장이 단독 입후보해 무투표로 당선될 만큼 동포들의 애정이 식어버렸다. 33대도 경선 없는 회장추대가 됐다. 회장직에 대한 열정이나 이에 주어진 명예마저 동포사회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훌쩍 커 버린 한인사회가 빚은 부산물이다. 어느 회나 새 리더가 등장하면 그 열정과 헌신에 따라 그 내용물도 바뀔 수 있다. 강 회장은 정부 판딩을 통해 재정확보에 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포들이 참여하는 한인회를 만들어 회도 활성화시키고 재정확보에 노력하는 것이 급선무다. 한인회 회장단이나 운영진도 젊고 참신한 인물로 전면에 내 세워 새 한인회 상을 새로 정립하는 것이 활성화의 단초가 될 것이다. 30년전 켐시 시계탑은 여전히 그 곳에 있어 한인들에게 오라는 손짓을 보내고 있다.
교민잡지 편집고문 | 박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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