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 교수
1960년대에 내가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우리는 “꿈의 시대: 그림 속에 나타난 호주 원주민 신화(1965)”란 제목의 책을 읽었다. 그 책은 “이러한 꿈의 시대의 신화들을 전해 준 갈색 인종들에게” 헌정된 책이었다.
이 “갈색 인종” 곧 호주의 원주민들은 우리에게 단순하고, 원시적이며,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기이했다. 그들의 아이들은 귀여웠다. 그들은 우리 나라의 내륙 야생에서 수렵 집단으로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aesthetic) 삶을 살았다.
그러나 최근에 나는 내가 이 땅의 원주민들에 대해 배워온 것들 중 많은 것들이 잘못된 정보와 인종 차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어린 시절 내가 받은 교육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있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배웠을 법한 일련의 신화들이 여기 있다. 이제 이러한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
신화1: 하나의 원주민 문화만이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꿈의 시대”라는 책은 인류학자 찰스 마운트포드(Charles Mountford)에 의해 쓰여졌고, 화가 애인슬리 로버츠(Ainslie Roberts)의 초현실주의 그림들이 삽입되어 있었다.
킵링(Kipling)의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들(Just So Stories)”란 책처럼 호주에만 있는 원주민의 이야기들 모음집이었다.
그러나 마운트포드나 로버츠 그 어느 누구도 원주민은 아니었다. 사실 로버츠는 영국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원주민 신화를 지나치게 단순화 하고, 대중화 하고, 과도하게 집약된 역본으로 재구성하였다.
마운트포드는 전체 원주민 문화를 획일적으로 묘사하면서 이야기 속에서 모든 문화적 독특성들을 제거했다. 이것은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인종이었던 초기 원시시대”에 존재 했던 세계에 대한 원시적인 방식의 이해라고 하는 시대적 믿음을 반영한 것이었다.
어린 아이었던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읽었고, 학교 벽에 복제품으로 걸려 있기도 했던 애인슬리 로버츠의 그림을 보았고, 원주민들이 하나의 크고 원시적인 족속을 이루고 있었다고 추측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1788년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호주에는 500개가 넘는 서로 다른 씨족 또는 ‘족속’들이 대륙 곳곳에 살고 있었고,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와 언어들을 가지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모두 오지나 사막에서 살았던 것도 아니다.
시드니는 에오라(Eora) 족속과 그 하위 부족인 카메라이갈(Kameraigal), 베디아-망고라(Bedia-mangora) 그리고 가디갈(Gadigal) 부족들의 고향이었다.
내 고향인 맨리(Manly)는 전통적으로 카이마이(Kayimai) 족속의 땅에 세워졌다.
멜번(Melbourne)은 우룬드제리(Wurundjeri) 족속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브리즈번(Brisbane)은 주게라(Jugerra)와 투리불(Turribul) 족속의 고향이었다.
아래 지도는 호주 전체에 걸친 원주민 족속들의 숫자와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당연히 호주 원주민들은 호주건국기념일(Australia Day), 백인들의 식민지로서의 조약, 헌법적 승인, 기념비 등와 같은 것들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마치 그들 모두가 서로 같은 족속인 것처럼 다소 획일적인 족속으로 그들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갈색 인종(Brown People)”이란 말로 그들을 축약해 버리는 것이다..
신화2: 원주민들은 태생적으로 소극적이고 게으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주로 어린 시절 맨리(Manly)에서 자랄 때 들었다.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을이 1790년 9월 총독 아서 필립(Arthur Philip)에 맞서 그의 다리에 창을 던졌던 공격적이고 남자다웠던 원주민 전사들(warriors)로 인해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들었다. 우리는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하며, 왜 그가 공격 받았던 해변이 맨리 해변(Manly Cove)라 이름지워졌는지에 대해서 들었는데 그것은 그 이름이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었다.
시드니 지역의 원주민들은 소극적이고, 잘 놀라고, 겁 많고, 쉽게 정복 당했다. 그러나 우리 마을의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전사들이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마이클 프로스트(Michael Frost)
몰링칼리지(Morling College) 선교학 교수이자 선교 연구 센터인 틴슬리 연구소(Tinsley Institute) 소장이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선교학자이자 선교적 교회 운동의 선구적 리더이다. 신학교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16권의 신학 서적의 저술가이며, 국제 학회의 강연자이며, 미국의 다수 신학교의 협력 및 방문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