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 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대형 참사였다. 세계 10대 경제강국, K컬쳐의 자존감이 한 순간에 폭사한 한국의 민 낯이 지구촌을 덮었다.

누가 뭐라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한국형 부조리가 빚은 재난 영화에 나올 법한 공포가 세계인들의 가슴을 찢고 있다. K팝,영화를 보고 한국을 배우고자 아니면 관광차 왔던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으로 귀한 생명을 잃은 코리아의 최고 수치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귀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장관의 변명은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의 증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한 단면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 호주 출신 희생자의 친구가 “무대책이 부른 참사”라며 통탄했다.
호주 채널 9은 호주인 희생자 그레이스 래치드(23)친구 네이선 타버니티가 틱톡의 영상을 통해 당시 상황을 보도했다. 앵커 피터 오버톤은 “왜 그 곳에 경찰의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느냐”고 질타했다.
타버니티는 “경찰과 응급서비스 인력이 부족했다”며 “아무도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사고 현장을 찍고 있거나 노래 부르고 웃는 걸 지켜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우리는 사람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고 사람들은 죽어갔다”며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30분, 지원인력이 투입되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구조대가 오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에게 CPR을 받는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을 ‘정부에 버림받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며 “많은 사람들이 몰릴 걸 예상했다면 왜 대비하지 않았냐”고 강조했다.
한편 호주 현지 매체는 사망자 래치드의 가족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영화제작사에서 일하던 ‘밝은 미소의 천사’같은 사람이었다고 전하며 애도를 표했다.

타버니티는 사고가 있기 전 친구들과 분장하고 찍은 셀카를 공개하며 “그레이스의 24번째 생일을 앞두고 이태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레이스가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했을 때 현장에 같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친구 중 한 명의 손을 잡았다”고 말하며 그는 눈물을 터뜨렸다.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인해 15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이 중 외국인은 총 14개국 26명이다. 출신 국가는 이란 5명, 중국·러시아 각 4명, 미국·일본 각 2명, 프랑스·호주·노르웨이·오스트리아·베트남·태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스리랑카 각 1명이다.

이태원 참사로 숨진 미국인 2명 중 한 명은 스무살 여대생 앤 기스케였다. 그가 재학했던 미 켄터키대엔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총장 명의의 켄터키대 성명에 따르면 기스케는 북부 켄터키 출신으로 이 대학 간호학과 학생이었다. 그는 이번 학기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참사 하루 전인 지난 28일 서울에서 생일을 축하했다고 폭스뉴스 등이 전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케이크 앞에서 환하게 웃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 ‘한강에서 20번째 생일 축하’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엔 그의 명복을 비는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NBC뉴스에 따르면 기스케의 아버지는 성명을 통해 “우린 앤을 잃은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비통하다. 앤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밝은 빛이었다”고 전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그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경찰력이 왜 그렇게 허술했느냐고 지적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사흘 전 경찰과 용산구 관계자 등이 모인 간담회에서 압사 사고 발생 우려가 제기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후속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인파 쏠림을 우려한 안전 문제는 연합회 측이 제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간담회 당시 연합회 측과 공동으로 불법촬영 방지, 마약류 단속 등에 대한 공동 캠페인을 논의했다”면서 “간담회 당시 안전성에 대한 구체적인 부분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예년보다도 많은 인원이 이태원 일대에 운집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현장 안전관리 인력 배치 등 구체적인 대책은 사전에 어디에서도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최고의 위기를 맞고 있다. 초대형 참사가 정부의 직접적인 책임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압사사건은 경찰의 사전 통제가 가동됐다면 막을 수 있었던 예고된 참사였다. 호주에서는 커뮤니티의 작은 행사에도 경찰이 동원되고 의료진 배치 등을 통해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인파안전 대책과 아울러 156명의 귀한 생명을 잃게 한 원인과 그 사건 책임을 가려 안전 불감증 코리아라는 오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교민잡지 편집고문 | 박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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