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천 대의 공공 전기차 충전기가 호주 전국에 신규 설치될 예정이지만, 전용 주차 공간 확보 의무 조항이 빠져 있어 막상 설치되어도 ‘그림의 떡’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ABC뉴스 보도에 따르면, 연방 정부는 2027년부터 ‘전기차 충전 가속화 프로그램(Accelerating EV Charging Program)’을 본격 가동해 사유지 주차 공간이 부족한 주거 밀집 지역의 전신주 등에 약 1만 4,000대의 노변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계획이다.
기후변화·에너지·환경·수자원부(DCCEEW)는 이번 사업을 통해 약 42만 대의 전기차 이용을 지원하고 9억 8,000만 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CO2) 배출 감축 효과(약 8억 200만 달러 규모)를 거둘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충전기 설치업체가 전용 주차 구역 확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반드시 협의할 의무가 없다는 규정이 걸림돌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신규 설치 충전기 대부분이 일반 차량도 자유롭게 주차할 수 있는 ‘비전용 주차 공간’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구별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자금이 조달되는 공공 충전 시설이 일반 내연기관 차량의 점유로 차단될 경우, 정부가 기대했던 탄소 감축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사유지 주차장(Off-street parking)을 확보하지 못한 4분의 1 이상의 운전자(도심 지역은 이보다 높은 비율)들이 충전 불편을 직접 겪게 된다. 전체 차량 중 전기차가 3%에 불과한 상황에서 귀중한 길거리 주차 공간을 전기차 전용으로 할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여전해 주차 구역을 둘러싼 지역 이웃 간 갈등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이미 시드니 주요 지자체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고 전기차 보유율이 주 평균의 3배 이상인 웨이벌리(Waverley), 울라라(Woollahra), 랜드윅(Randwick) 등 동부 교외 지역에서는 320개 공공 충전소 중 전용 주차 구역이 없는 90개 충전소의 이용률이 극히 저조하다.
해당 지역 충전 프로그램 관리자 앤서니 와인버그(Anthony Weinberg) 씨는 “전용 주차 구역이 없는 충전소의 이용률은 전용 구역이 갖춰진 곳의 5~10% 수준에 불과하다”며 “충전소를 여러 번 찾아가도 매번 다른 차가 가로막고 있어 운전자들이 결국 사용을 포기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스본다이 오션 스트리트의 전용 충전소는 1년간 988회 사용된 반면, 1km 떨어진 글렌에어 스트리트의 비전용 충전소는 40회, 인근 컬루이스 스트리트의 비전용 충전소는 단 4회 사용되는 데 그쳤다.
시드니 이너 웨스트 카운슬(Inner West Council)의 내부 보고서에서도 전용 주차 공간이 마련된 충전기(78기)가 비전용 충전기(68기)보다 사용량이 4배 높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너 웨스트 카운슬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는 향후 전용 주차 구역이 확보되지 않는 한 충전기를 새로 설치하지 않거나, 기존 비전용 충전 구역을 전용 충전 구역으로 순차 전환하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